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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시는 예수님, 따라가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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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14. 중고등부 주일 설교

본문: 마가복음 11620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한 주 동안도 잘 지내셨나요? 곧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지요? 남은 방학기간 동안 재미있게, 알차게, 건강하게 좋은 추억을 많이 쌓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지난 주 와 같이 마가복음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예수님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들이지요. 그래서 지난 2주에 걸쳐서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이 어떤 것인지,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신 모습으로 왜 오셨는지 말씀을 나눴어요. 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인데, 16-20절까지 매우 짧은 본문이기도 하고 내용이 굉장히 단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도전을 주고 계신지 알 수 있지요.

 

  예수님의 제자가 전부 몇 명이었죠? 12명이지요.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12명의 제자 모두를 부르시지는 않아요. 16절에 보면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 (2), 그리고 19절에 나오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2) 이렇게 4명을 부르십니다. 마가복음에는 실제로 12명을 부르시는 장면이 다 나오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냐보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 함께 살펴봅시다. 먼저 16절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은 먼저 그냥 잘 살고 있는 제자들을 보셨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다가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셨냐면, “따라와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줄게라는 약속 이었지요.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이렇습니다.

18절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9절과 20절에 나오는 야고보와 그 동생 요한을 부르실 때도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시다가 어부였던, 그래서 그냥 그물을 깁는 야고보와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가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오라고요. 그러자 이번에 이들은 아버지를 일꾼들에게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214절에 보면 다른 제자 레위가 부르심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레위는 세관이었어요. 그래서 자기 직장에서 세금 걷는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오너라.” 그러자, 레위가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주보에 적혀 있는 313절의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하시자 그들이 다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던 제자들이 저기..잠깐만요. 누구세요?”라는 질문을 했다거나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라고 주저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셨고, 그들을 보셨고, 오셔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따랐다는 내용뿐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연스러워 보이시나요? 만약에 처음 본 어떤 사람이 학교를 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 나를 따라와라한다면 여러분은 학교에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사람을 따라 갈 수 있나요? 성경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이 IQ가 조금 모자라서, 아니면 예수님이 너무 잘 생겨서 따라갔을까요? 도대체 그들은 왜 예수님의 한 마디에 아무런 거부반응 없이 즉각적으로 따라갔을까요?

 

정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100% 사람이시고 동시에 100%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했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좀 전에 여러분에게 따라오라고 했던 그 남성이 버락 오바마라고 해봅시다. 여러분이 학교 가는데 오바마가 오더니 인자한 미소로 “follow me”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오바마를 따라 갈 겁니다. 왜죠? 그가 가진 능력과 지위를 우리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좋은 것을 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 이십니다. 왕이 부르는데 의심 없이, 고민 없이 따라가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요?

, 제자들의 이런 즉각적인 반응은 제자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왕이시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왕이시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먼저 이들의 삶 속으로 찾아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제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하자고 초청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배의 자리로 초대 하셨지요. 말씀으로 초대 하시고 우리 삶 속에, 우리 맘속에 들어오시겠다고 합니다.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분에 의해서 죄로부터 생명을 얻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셔 들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예수님은 우리를 왜 부르신 걸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 제자들의 삶을 살펴봅시다. 제자들이 보인 공통적인 반응은 모두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떠났다는 겁니다. 어부였던 사람은 그물을 버렸고, 세관이었던 사람들은 그 자리를 버렸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직업도 없이 교회로만 모이라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부로, 세관으로 살았던 제자들은 삶의 중심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는 대로 똑같이 살았던 자들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다스림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중심이 세상에 예수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이 자신에서 예수님으로 바뀌었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학생인 여러분,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학교를 박차고 나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으로 성실한 삶을 사십시오. 그러나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학생이 아니라 학교에서 크리스천으로 예수님의 다스림 가운데 살라는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를 따르라의 의미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어로 follow라고 하지요? 그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따른다는 건 무슨 뜻 이냐면요, [@@의 뒤를 따라가다. @@뒤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따라가는 사람은 나를 이끄는 사람을 절대 앞서지 않습니다. 앞설 수 없습니다.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앞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신이 앞장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지요. 예수님께 이것저것 좀 해달라고 명령까지 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셨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다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원수인데, 원수면 죽여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우리의 본능적인 생각인데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이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을 원수에게 하라는 겁니다. 이해되지 않지요.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서 진짜 그 길을 가는 겁니다. 추상적인 개념의 순종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행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향해서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친절을 베풀고, 다가가 인사하고, 원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 처럼 말이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3:14절에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12명을 세우셨습니다. 그 이유는 1)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2)그들을 내보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3)귀신을 쫓게 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세상의 부르심을 생각해봅시다. 세상의 부르심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불러서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누립니다. 세상에서 힘이 없으면 불려가서 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게 되지요.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을 쌓기 위해 노력 합니다.

 

   이번에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첫 번째, 함께하시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 에 나눴던 말씀이지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가 살아갈 인생의 완벽한 롤 모델이 되어주셨다고요. 예수님과 함께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겁니다. 나아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죽으심에, 부활하심에, 승리하심에 함께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부르심은 또한 어떠합니까? 나가서 말씀을 전하고 귀신을 쫓습니다. 둘 다 어떤 특징이 있지요? 나를 위한 게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이, 귀신이 들린 상대방을 위한 겁니다. 세상은 자신을 위해 약자들을 이용하지만 예수님은 약자들을 위해 나아가시고 그들을 고치시고 치유하신다는 겁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더 힘없고 낮은 곳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사셨던 그 멋진 인생의 방식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살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받는 사람만 복될까요? 아니에요. 제가 여러분에게 10만원씩 준다고 가정해봅시다. 10만원을 여러분에게 주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할 일은 무엇이죠? 저에게 2000만원이 넘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겠고,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복을 전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 이었습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더 낮은 곳으로 복을 전하고 약자들을 위해 살게 하신다는 것은 먼저 우리를 채우시고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는 것이지요. 복을 받는 수준이 아니라 복 자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먼저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함께 걷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반응한 제자들과 같이 우리도 지금 이 순간 그 길을 따르겠노라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다는 것은 거창한 결단이 아닙니다. 제자들과 같이 그냥 지금 이 순간 주님께로 우리 마음을 돌이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면 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그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돕고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걷는 삶이 가장 복되고 가장 빛나는 멋진 삶입니다. 그 길에 주님을 따라 걷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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